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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신앙

헌신에 관한 예화 모음

by 카이로 B.G.PARK 202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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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자선행위에 의하여 돈을 어디엔가 바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돈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예사인데 사실은 이와 다르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면 그만큼 들어오게 된다. 자선하는데 돈을 쓰면 쓸수록 돈은 다시 그 사람에게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할 때 다음과 같은 탈무드의 이야기를 인용할 수 있다.

어떤 곳에 큰 농가가 있었다. 그 집주인은 예루살렘 근처에서 가장 자선심이 후한농부라고 일컬어져 왔다. 해마다 랍비들이 그의 집을 방문하면 그는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었다.

그는 큰 농원을 경영하고 있었으나 어느 해 폭풍우 때문에 과수원이 전멸한데다가 악성 유행병마저 퍼져 그가 기르던 양과 소와 말들이 모두 죽었다. 이것을 본 채권자들이 그에게 몰려와 재산을 모두 압류해 버려 그에게는 작은 토지밖에는 남지 아니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께서 또 거두어 가시므로 하는 수 없지" 하며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해에도 여느 때처럼 랍비가 찾아왔다. 랍비들은 그렇게도 많은 소유가 있었는데 이처럼 몰락해 버리다니 하고 동정을 금치 못하였다. 농장 주인의 아내는 남편에게, "우리들은 언제나 랍비들에게 학교를 세우고 예배당을 유지하고 또는 가난 한이나 늙은이들을 위할 만큼의 헌금을 해 드렸는데 올해엔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요?"했다.

부부는 랍비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작은 토지의 절반을 팔아서 그것으로 랍비들에게 헌금을 하고 그 대신 절반의 토지로 더 열심히 일해서 메꾸어 보리라 생각했다.

랍비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헌금을 받고 크게 놀랐다.

남아있던 절반의 토지를 갈고 있는데 밭갈이 하던 소가 쓰러져 버렸다. 흙투성이가 된 소를 들어내고 있는데 소의 발밑에서 보물이 나왔다. 그들은 그 보물을 팔아서 또 옛날 그대로의 농장을 꾸릴 수가 있었다.

이듬해 랍비들이 다시 왔다. 랍비들은 그 농부가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전의 그 작은 토지로 찾아갔다. 그런데 근처의 사람들이 "아니오, 그는 이제 여기서 살지 않아요. 저쪽의 훨씬 큰 집에 살고 있답니다."했다.

랍비는그 집으로 찾아갔다. 농장 주인은 지난 한 해 동안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면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의사가 손을 씻듯이

뉴욕에 있는 브릭 장로교회의 저명한 목사인 몰트비 바브코크에게 그 교회에 다니는 의사 한 사람이 찾아갔습니다. 그 의사는 바브코크의 건강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바브코크에게 극장표 몇 장을 건네주면서 "받으십시오. 목사님은 이 연극을 보면서 좀 쉬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브코크는 극장표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표들은 자기의 양심상 관람할 수 없는 연극인 것을 알고 친절해 대답했습니다."고맙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연극은 관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안 되는 거죠?" 하고 의사가 물었습니다.

"박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시면 잘 아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의사이시죠, 그것도 외과 의사입니다. 선생님이 수술하실 때면 손을 아주 꼼꼼하게 닦으시죠? 그것이 깨끗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아마, 더러운 손으로는 수술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저는 사람의 귀중한 영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감히 더러운 삶을 살면서 인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름 없는 돌이 되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총명한 학생이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봉사하겠다고 지원하자 그를 아끼는 어떤 교수가 이렇게 충고하였다.

"자네는 일 년이나 이년 내에 죽게 될지도 모르네. 그것은 미친 짓이야."결국 그 젊은이는 아프리카의 오지로 뛰어든 지 일 년 만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죽기 전에 그는 스승에게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답장을 띄워 보냈다.

"저는 아프리카 선교 사업이 마치 커다란 다리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량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땅속에 얼마나 많은 돌이 묻혀야 하는지를 교수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내게 아프리카의 땅 속에 묻히는 이름 없는 하나의 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아프리카의 땅 위에 복음의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 하면서."(S. S. World)

 

완전한 굴복

어떤 젊은 아가씨가 전도자에게 완전한 헌신의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나는 도저히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지를 못해요” 그녀는 말했다.

“그가 나를 비참하게 될 선교지에다 보낼까 두렵거든요.”그 전도자가 대답했다. “어느 춥고 눈 오는 날 아침에 한 마리 작은 새가 반쯤 얼어붙은 채 당신의 창을 쪼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이 무력한 어린 새가 당신에게 붙들려 자기를 먹여 주도록 또 자신을 완전히 당신의 통제 하에 맡겨버린다고 상상해 보시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렵니까? 말해 보시오. 당신 손 안에 움켜쥐어 눌러버리겠습니까? 아니면 피난처와 따뜻함과 먹이와 보호를 베풀겠습니까?”

즉시 그 아가씨의 두 눈은 그 말의 뜻을 깨닫고 빛이 났다. 여러 해 후 그녀는 다시 그 전도자를 만났으며 그로 인해서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기억나게 했다. 그녀의 표정은 다음과 같은 설명의 말을 할 때 후끈 달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사 선교지에서 일하게 했어요.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그녀의 체험은 모리스의 이와 같은 말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승리하신 구주여. 당신의 귀중한 뜻이 이제 나를 품고 에우나이다. 모든 불화는 잠들고 내 평화는 강물이오니 내 영혼, 갇힌 새가 자유케 되도다.”

완전한 굴복은 꽃이 뿌려진 길과 구름 없는 날들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구주의 임재하심과 그의 인도하시는 손길의 안정성을 확신한다. 두려움은 변하여 믿음이 되며 우리는 이처럼 노래할 수가 있다. “감미로운 하나님의 뜻이여 여전히 나를 보다 더 가까이 두르고 있도다. 내가 당신 안에 완전히 죽어질 때까지.”

 

C.T 스터드의 헌신

C.T 스터드는 16세 때에 이미 유능한 크리켓 선수였고, 19세 때는 영국 이튼에서 그의 팀의 주장 선수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캠프리지대학 재학 시, 그는 무디의 설교를 듣고 놀랍게 개심을 하였습니다. 더불어, 그의 생애와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결심했고, 그는 그의 팀 동료들을 개심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전 생애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드슨 테일러에게로 가서 중국 선교를 위한 사역에 그 자신을 드렸던 것입니다.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그에게 오늘날의 5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의 유산이 즉시 상속되었음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즉시 모든 유산을 하나님께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53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프리카의 중심부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라."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주님이 그를 부르실 때까지 충성으로 일했습니다.

그가 바로 WEC(World 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의 창설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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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정신 실천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 하고 죄인인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습니다. 날로 각박해지고 험악해지는 오늘날 사람들은 이웃이 조금만 잘못하면 무섭게 심판하고 그것을 기화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예수님께 서는 인간의 죄를 정죄하시지 않고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희 생으로 영생과 중생을 얻은 크리스천은 이 희생의 정신을 그대로 생 활 속에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1서3:16)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는 부활이 따릅니다. 값진 희생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10억이 넘는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이 한 알의 밀이 되어 희생할 때 하늘나라의 풍성한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그에 대한 보상을 받습니다.

희생이 낳은 열매

1798년에 제너는 천연두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젖소에서 천연두의 면역성을 가진 우두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천연두 면역성이 생긴다는 것을 학회에 보고했습니다. 학회에서 마지막 실험 단계에 들어갔을 때 당시에 제일 유명했던 영국의 학계의 권위 있는 의사들을 위시해서 많은 동료 의사들은 질투와 시기에서 그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시골뜨기 의사가 의학을 모르고 하나님과 의학을 모독한다고 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을 구별할 줄도 모르느냐고, 동물에게 실험한 것이 사람에게 적용이 될 수가 있겠느냐고 조롱을 하면서 그것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그 학회에서 그것이 부결이 되면 당시는 인체 실험이 매우 어려운 때이고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다시 빛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몇 달 전에 어느 사람에게 주사를 해서 듣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한 사람의 임상 실험을 가지고 되느냐며 또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너는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23명을 실험했고, 낳은 지 열 하루밖에 되지 않은 제 아들에게도 실험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장내는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은 결사적인 실험이었습니다. 인류에게서 천연두를 없애 버리기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혼자만의 시간

몇 년 전에 나의 아내가 그녀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원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휴무일 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오늘은 내가 아론을 돌볼 테니 차를 타고 나가서 가고 싶은데 가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다가 돌아오구려. 쇼핑을 하든지 아니면 해변 가로 가든지 또는 친구를 방문하러 가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구려.”

아내는 '지금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내는 곧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아내는 혼자 외출했다. 아론과 내가 집에서 3Km 반경 이내에 있는 어린이 공원을 찾아다니며 노는 동안 아내는 산장에 있는 호수를 향하여 갔다. 그녀는 나무 아래에 있는 아늑한 장소를 찾아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소설책을 꺼내어 읽으며 6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전화벨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칭얼거리는 아이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난장판이나 소란도 없었다. 그저 찬란한 햇빛과 푸른 하늘. 반짝이는 물결 그리고 이따금씩 보이는 배가 전부였다. 아내는 잠깐 낮잠까지 즐기고 난 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시내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나중에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다시피 그때 난 생전 처음으로 혼자 식당에 들어가 보았어요.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왔지만 아내가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자상한 아버지는 모든 가족들이 각각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막6:31)

호혈호구

범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범 새끼를 잡지 못한다. <한서>의 저자로서 유명한 후한의 반 고 에게는 반 초 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다. 나이 사십 가까이 되어 가까스로 그 지식과 능력을 인정받아 서역의 선선이라는 나라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후하였던 대우가, 어느 날 별안간 백팔십도로 뒤집히어 냉대로 바뀌었다. 반 초는 선선이 자기한테는 감추고 있지만 북방의 강적 흉노의 사신이 왔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가 틀림없음을 알아차리고 "호혈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호랑이 새끼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외치자, 부하를 거느리고 흉노의 사절일행에게 야습을 감행, 몇 배나 되는 것을 전멸시켰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든지 기존의 것을 발전시키는 데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겠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호세의 발

추운 겨울날, 캘리포니아의 한 부랑아 수용소인 마린카운티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걸인, 부랑아들로 북적거렸다. 간이침대와 담요가 턱없이 부족하여 흑인, 라틴아메리카인, 백인들이 서로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자원봉사자인 로드니는 난감하기만 했다. 몇몇 부랑인들은 다른 사람의 담요를 빼앗기까지 했고 한 흑인여성은 자신에게 담요가 돌아오지 않자 인종차별이라고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런 혼란 중에 마지막 남은 담요 한 장은 라틴아메리카인인 호세라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호세는 담요를 수용소 한가운데에 펼치더니 금새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 때 어디선가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호세의 발 냄새였다. 악취가 온 수용소 안에 가득 차오르자 부랑아들이 발을 씻기려 했지만 91kg이 넘는 거구의 호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냄새를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호세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하자 같은 라틴아메리카인들이 폭발할 것 같은 노한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보았다. 실내는 금새 험악해져 싸움이라도 한 판 벌어질 분위기였다.

그때 로드니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따뜻한 물을 담은 세숫대야와 비누, 수건을 챙겨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호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호세의 발을 대야에 담그고 씻기기 시작했다. 발바닥, 발목, 발등, 발가락까지 로드니는 아주 정성스럽게 발을 닦았다. 어느새 로드니 주위로 부랑아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로드니는 난폭한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손가락이 떨리기까지 했다. 얼마 후 로드니가 수건으로 호세의 발을 닦아주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묵 속에서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운 손길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수용소에는 더 이상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호세의 머리맡에는 부랑아들 중 한 명이 가져다 놓은 새 양말이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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