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유래
미국에서 11월 넷째 목요일에 기념되는 추수감사절은 그 유래가 17세기 초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첫 번째 추수감사절”은 1621년 영국 정착민인 순례자들이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서 첫 번째 성공적인 수확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었을 때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Massasoit 추장이 이끄는 Wampanoag 사람들을 축제에 초대했습니다. 이 모임은 상호 협력과 음식 공유로 특징지어졌으며, 순례자와 원주민 사이의 짧은 평화와 선의의 순간을 상징했습니다.
휴일의 중요성은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 왔습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중에도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하여 화합과 감사를 강조했습니다. 링컨의 선언은 이 명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였던 저명한 작가 사라 조세파 헤일(Sarah Josepha Hale)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노력은 국가의 혼란 속에서도 평범함과 감사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자신이 받은 축복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전통 음식에는 칠면조 고기, 속채소, 호박 파이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명절은 역사적 뿌리를 넘어 감사와 가족 화합의 더 넓은 상징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정착민 사이의 복잡한 역사를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현대 축하 행사에는 퍼레이드, 축구 경기, 다양한 자선 활동 등이 포함되어 나눔과 화합의 정신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간접적으로는 신구약 성경, 직접적으로는 청교도들의 '미국 이주'이다.
구약 성경의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이 추수감사절과 관련이 있다. 맥추절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우량품들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였다(출 23:16, 34:22).
그러나 11월 셋째주 주일에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주일의 직접적이고 근대적 유래는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의 '감사'에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북미 대륙으로 온 경건한 신앙인들이다.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영국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 이어진 종교 박해였다.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불리는 영국 청교도들은 1600년대 초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것이 직접적인 유래에 해당한다.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지금 달력으로 8월 15일) 스피드웰(Speedwell)과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美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초반에 배가 고장나 물이 새 다시 귀항했다.
한 달 후인 1620년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V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출발했다. 남자 78명과 여자 24명 등 전체 102명이 출발했으나,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탄생했다.
그들은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5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다.
63일간 3,400마일(5,440km)의 멀고도 긴, 그리고 위험한 항해 끝에 닻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그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는 북쪽 메사추세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들은 토요일에 도착했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그들은 항해 동안 어떻게 보냈는가? 찬송을 많이 불렀다. 그들은 후일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만 불렀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했다."
청교도 개척자들은 무사히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더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다. 11월 중순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해(1620-1621) 겨울, 2-3개월 내 도착했던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
특히 1-2월의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씩 죽어나갔다. 생존자는 50명뿐이었고, 그들 중 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다.
이러한 가운데 6-7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등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자,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그해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하게 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다.
그리고 의의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6)". 청교도들은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 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결국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 온 다음 해인 1661년 가을,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기도 중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첫날인 주일에는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부르고, 말씀 받아 묵상했다. 둘째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셋째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했다.
90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pumpkin pie)를 가져와 같이 친교를 나눴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게 됐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은 다음에야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이야말로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요, 믿음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을 했다.
1623년 정착지 플리머스 책임 행정관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선언했고,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이 날을 국가 기념일로 선포했다. 추수감사절은 지역마다 날짜가 제각각이었으나, 1863년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통일됐다.
출처 : 기독일보에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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